일
잦아지는 해외출장
올해 해외로 나갈 기회가 잦았다. 우리나라가 아닌 타국의 문화에 적응하면서 출근하고, 그저 편한 환경이 아닌 익숙하지 않은 환경에서 긴장속에 생활을 영위한다는 건 조금 피곤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기서 새로움을 가져갈 수 있었던 건 나에게 소중한 경험이었다. 이런 경험이 반복되자 리로케이션에 대한 욕심이 다시 생겼다. 올해 여러 이유로 리로케이션을 멈추게 되었는데, 내년에는 다시 도전해보자는 목표가 생겼다.
협업, 소통
각자 살아온 환경이 다르기에, 목표가 같더라도 수행하는 작업에 대한 의견차이가 생길 수 밖에 없다. 이를 알면서도 협업하는데에 생기는 이견은 수용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내가 생각하는 주요한 가치와 상대가 생각하는 주요한 가치가 다르기에, 상대가 틀린 이야기를 하는게 아닌 이상 이 이견을 좁히는 역량과 경험은 불가결의 무엇이다.
개발자들 사이에서는 문제 해결 과정에서 특히나 다양한 의견들이 쏟아진다. 이는 그들의 다양한 배경과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다. 연차가 쌓이게 되면서 역량도 증진되지만 해결해야하는 문제의 복잡도도 자연스럽게 뒤따른다. 복잡계 문제를 해결하면서 가장 우리가 많은 결정을 내리는 것은 두 선택 사이의 균형을 지키는 일인데, 흔히 말하는 trade-off 다. 무엇을 포기하고 무엇을 취하는지, 그에 따라 우리가 감수해야할 영향은 무엇이며 business 상 왜 타당한 결정인지, 등등 복잡계 속에서 각자의 의견을 피력한다. 이 때 정말 많은 의견들이 나온다. 단순히 하나의 기능을 개발하는데에도 데이터베이스와 여러 큐를 사용해서 요청을 확실하게 처리한다던지, 캐시 서버를 사용해서 사용자 경험을 갑자기 일어난 장애로부터 보호한다던지 등등의 갖가지 방법론과 그들의 원리 원칙을 강조하며 문제를 해결하려 애쓴다. 이번에 중요하다고 생각이 든건, 어느 원리 원칙이 중요한지 판단의 영역 대신 어떻게 다양성을 보장하면서 하나의 방향으로 팀의 의사결정을 일원화할 수 있을지에 가깝다. 팀이 항상 옳은 선택을 내릴 수 없을 뿐더러 그 옳음을 판단하는 행위 조차 제 3자의 잣대일 뿐이다. 토론에서 각자의 원리 원칙을 고수하고 주장해야하지만 결코 자신의 의견을 지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닌, 자신이 수긍할 수 있는 과정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행위라는 것이다. 그래야 팀이 동의할 수 있는 의사 결정 프로세스를 통해 합의에 이르러 모두의 100% 퍼포먼스를 쏟을 수 있는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
그럼 어떻게 합의를 할 수 있을까. 가장 쉬운 방법은 자신이 현재 가지고 있는 자산으로 상대를 설득시키는 것이다. 나는 가만히 있고, 내가 가진 경력, 권위로 그럴 듯한 문장과 숫자를 만들어내 그 사람에게 내미는 것이다. 주로 시니어와 주니어 사이에 많이 일어나는 설득 방식이다. 합의라기 보단, 수시(垂示) 에 가깝다. 가장 빠르고, 안전한 방법이다. 경력이 화려하고, 이전의 결정들이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온 경우, 그 사람의 의견은 더욱 강력한 설득력을 가진다. 다만 관계의 특수성에 의존하기에 일반적으로 사용할 수 없는 방법이다. 만약 조직이 여러 시니어로 조직되었을 경우, 특히나 사용할 수 없는 방법이다.
시니어가 많은 팀은 어떤식으로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가. 내가 지켜본 팀들은 주로 위계가 생기거나, 각자가 말하는 원칙에 따라 사람들이 모여들어 파벌이 만들어지는 경우다. 첫 번째 경우는 시니어들 중에 가장 기술적으로 해박한 사람의 의견에 편승하는 방식이다. 시니어 사이에서도 앞선 문단에서 언급된 시니어-주니어 관계가 구성되는 것이다. 평가의 대상이 되면 어느 잣대로 -상사에게 더 많은 신뢰를 얻는다던가, 제한된 도메인에서 많은 히스토리를 알고 있다던가- 든 어떻게든 "상대적" 순위를 만드는 것은 손쉽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사람에게 판단을 위임하고 판사가 되어주길 바란다. 두 번째 경우는 자아(ego) 가 강한 사람이 여러 명 있을 때 나온다. 각자의 원칙 (간단하고 빠르게, 예상할 수 있는 것은 미리) 을 지키고 그 원칙에 동의하는 사람들끼리 모여 파벌을 이루는 경우다. 파벌 자체가 건강하지 못한 것은 아니다. 적절한 원칙이 적재장소에 사용되면서 끊임없는 토론을 통해 의사결정이 이루어지고 각 의견의 부족한 부분은 그 파벌의 다른 자가 의견을 피력하며 채운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몰랐던 것을 알게되고, 설득되어 그 의사결정에 따르게 되는 것이다. 사람은 감정이 있는 동물이기에, 비단 논리의 당위에 따라 움직이기 어렵다. 그래서 파벌은 사람의 감정마저 설득할 수 있는 장치의 일부로서 작동하고 그렇기에 내가 건강하다고 표현한 이유다. 건강하지 못할 경우는 합의에 다다르지 못했을 때 벌어진다. 반복되는 토론에 지치거나 시간이 임박하여 어떻게든 결과를 만들어 내야 하지만 결정을 내리지 못했을 때. 지친 쪽이 포기하는거다. 그리고 거기서 벌어지는 결과에 따라 본인은 반대 의견을 피력했음을 강조하며 상대보다 나음을 자위한다. 이는 당장 어느 한 방향으로 결과는 만들어지지만 결국 양쪽 모두에게 최악의 결과를 가져온다. 상대의 의견을 수용하지 않고 자신의 원칙에 따라 일을 진행한 사람들은 자신들이 보지 못한 영역에서 예상하지 못한 문제가 나왔을 때, 몹시 당황하며 해결하는데에 시간이 더 걸린다. 당연하게도 사람은 모든 것을 예상하고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이는 반드시 한 번은 예정된 상수(constant)다. 그렇다고 포기한 쪽은 비단 마음이 편한 것도 아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던 영역을 신경쓰지 않는 것은, 그에 대한 결과 또한 겸허히 수긍할 수 있어야 지속할 수 있으나 그렇지 않다. "그럴줄 알았다" 라고 말하는 것도 처음 한 두번이고 결국 그 결과는 인과로 돌아오고 자신이 진행하는 다른 일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 인과는 배가 된다. 결과적으로 이견을 피하는 것은 전혀 방법이 아니다.
상대와의 이견을 좁히는 것은 필수적이지만, 이를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고민 중이다. 그럼에도 내가 하는 시도를 남겨보자면 상대의 저의를 생각하고 쿠션어 없이 구체적으로 물어본다. 사람은 고맥락 생물이라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식이나 사고가 상대에게 (얼마나) 있는지 알 수 없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을 상대도 알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상대가 무엇을 모르는지 내가 알 수 없으므로 우선 같은 토대위에 서서 대화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같이 일한 시간이 긴 동료라면 그 시간동안 형성된 라포(rapport, 상호 신뢰)로 인해 소통의 자유도나 맥락의 합치가 간편하다. 다만 같이 일한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의 경우, 문제 자체에 대한 소통보단 문제 외의 소통을 주로 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서 상대가 모르는 부분을 찾아내면 그것을 맞춰나감으로 이견의 합일을 만들어내는 것을 목표한다. 매우 추상적이고 실용적이진 않지만, 2024년엔 좀 더 실제적 이야길 할 수 있도록 많은 시도를 해보려 한다.
대학
전공에 구애받지 않고 원하는 공부를 할 수 있는 해외 기숙사 제도를 갖춘 대학이 있다는 사실에 흥미를 느껴 지원했다. 지원 과정에서 느낀 것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선택에 따른 잃을 것들이 확연히 많아졌다는 것이다. 하나의 결정을 내릴때도 고민하는 기회비용, 매몰비용의 양이 달라진다. 처음엔 단순한 호기심에서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올해가 마지막 지원이 될 것 같다. 내가 돌아갈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것을 인지하는 상태에서 일을 한다는 건 몰입하지 않을 이유를 만드는 것 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올해는 일에 집중할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나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이었으며, 내년에는 일 자체에 집중할 것을 목표로 삼을 것이다.
문화
싸이 흠뻑쇼와 새소년, 그리고 연말 싸이 콘서트 등 신나고 분주한 분위기의 콘서트들을 많이 다녔다. 쉬는 방법을 알고 싶었다. 내가 제대로 쉬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에만 몰입하는 것은 내가 그래서야하는 것이 아닌, 쉬는 법을 모르기 때문이었다. 그동안 휴가를 쓰지 않아서 올해 휴가가 30일 넘게 남아있었다. 지치고 집중이 잘 되지 않는다고 느껴질 때, 휴가를 사용하기로 결심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먼저 느껴진 것은 두려움이었다. 만약 길게 쉬면 무엇을 해야할지 생각이 나질 않았다. 무지에서 오는 두려움을 증명이라도 하듯,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떤 활동을 해야 휴식의 만족감을 느낄 수 있을지 몰라 휴가를 어떻게 보내야 할지 두려움을 느꼈다. 며칠을 고민하다가 결국 장기 휴가 상신을 취소하고,사나흘의 휴가로 갈음했다. 무턱대고 쉬어봤자 자극적인 것에 휩쓸려 시간을 죽이다가 끝날 것 같아,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시도해보고 찾게되면 그것에 몰입하는 휴가를 보내자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콘서트를 다니기 시작했다. 원래 뮤지컬을 종종 관람하러 다녔는데, 킹키부츠라는 신나는 뮤지컬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 이를 계기로 시끄럽고 정신없는 곳을 가서 일을 생각하지 않는 것을 연습하려 했다. 처음 갔던건 싸이의 흠뻑쇼. 여름에 하는 콘서트로 아티스트의 무대와 함께 다량의 물을 뿌려 사람들이 열광적으로 무대에 몰입할 수 있게 하는 장치가 좋았다. 덕분에 더운 날씨에도 더욱 뛰어놀기 좋았다. 혼자 갈 용기는 없어서 친구랑 같이 가려고 했는데 친구가 갑자기 당일 아픈 바람에 혼자가게 되었다. 지금와서야 말하지만 그 친구가 좋은 계기를 선물해 준것 같다. 혼자 간 콘서트는 가기전 두려움이 무색할 정도로 나에게 집중할 수 있었고, 타인의 시선을 신경쓰지 않고 무대만 즐길 수 있었다. 이를 시작으로 혼자 무언가를 하는 데에 두려움이 많이 줄어들었다. 사람이 적은 외곽 지역의 카페에도 혼자 가보고, 책을 읽고 휴대폰 대신 경치를 보는 등의 외로움을 즐기기도 했다. 제대로 즐기지 못할까하는 걱정에 휴가를 쓰지 못하던 연초의 나와는 달랐다. 생일에도 약속을 잡는 대신 내가 원하는 장소에 원하는 책을 들고 바람을 맞으며 즐겼다. 홀로서기에 자신을 붙일 수 있었던 소중한 한 해였다.
운동
올해 초에 좋은 인연의 트레이너 선생님을 만났다. 운동 자체보다 운동을 하는 본질에 집중하려고 애쓰는 분으로 단순히 동작하나에 의미를 부여하기 보다, 전체적인 방향을 조정하려고 노력하는 분이었다. 물론 운동관련에서도 많이 배웠지만, 그 외에 프로로서 운동을 대하는 그의 자세와 선택하는 어휘에서 많이 배웠다. 이런 것들에 흥미를 붙여 운동을 함께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수치적으로도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근육량 47kg와 체지방 18%, 깨나 몸이 가벼웠다. 삶에 대한 만족도도 가장 높았다. 다만 6월에 집을 옮기게 되면서 운동을 조금 소홀히 하게 됐다. 6개월이 지난 지금 43kg와 26%로 근육량은 4kg 감소하고 체지방률은 8% 늘어났다. 어렴풋이 느꼈던 피곤함이 눈에 보이는 수치로 나타나자 더욱 날 누르는 것 같기도 하다. 꾸준하게 이어나가는 것이 참 어렵다. 내년에는 운동을 꾸준히 하는 것 뿐만 아니라 운동을 관리하면서 (무게를 기록하는 등) 체계를 잡아나가는 노력을 병행해보려 한다.
2024년 OKR
Category | Objective | Key Results |
역량 | 메타인지 연습하기 | 분기에 한 번 회고글 작성 |
일기 360일 이상 작성 | ||
휴식 | 내 취향 찾기, 쉬는 것에 익숙해지기 | 공연 3회 이상 관람 |
해외여행 3회 이상 | ||
독서 6권 이상 | ||
건강 | 운동하기 | 300일 이상 최소 1회 운동 진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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