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생각들

2024 회고

열며

회고를 작성하기 위해 올해 캘린더를 쭉 훑어봤다. 새로운 만남도 있었고, 쭉 이어져 가는 인연이 되는 것에 있어 조금은 놀라운 감정이 든다. 월별 내가 한 일들에 대해 적어나갈까 싶었는데, 그냥 각 이벤트에 대해 내가 적고 싶은 단상들을 남기는 방식으로 가기로 했다.

타인을 위한 소비

우리 가족을 위해 발리 여행을 예약했다. 비행기부터 숙소, 공항까지 가는 택시까지 모두 내가 지불했다. 평소 같았으면 가성비를 따져 물으며 망설였을텐데, 가족을 위한다는 핑계가 붙으니 결제를 완료하기 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전체적으로 적지 않은 금액이었지만, 가족에게 첫 비즈니스 비행기 경험을 시켜준다는 자부심이 더 컸다. 다행히 가족은 모두 좋아했고, 뿌듯했다. 내가 열심히 노력한 댓가를 받는 기분이 들었다. 나에게 소비하는 것과 타인에게 소비하는 것은 둘 다 나에게 기쁨과 만족감을 선사한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나의 경우 차이가 있다면 그 길이가 달랐다. 나에게 쓰는 돈은 소비하기 전까지 드는 기대감이 나를 행복하게 만든다. 소비의 목적물이 나의 손에 곧 들어온다는 기대감이 나에게 소비하는 이유가 된다. 내가 대상을 갖게 되는 순간, 이 감정은 타버린 장작처럼 곧 불꽃이 사그라든다. 이내 관심을 잃고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자리를 차지한다. 타인에게 쓰는 돈은 연속성을 갖는다. 타인이 느낄 기쁨에 대한 기대감으로 시작해, 그 사람의 반응에 따라 공감되어 덩달아 오는 기쁨이 찾아오고, 함께 추억하며 다시 한번 미소가 지어진다.

행복에 대한 가성비를 엄밀히 따져 묻자면, 나에게 있어서는 (나와 가까운) 타인에게 하는 소비가 좀 더 높은 가성비를 가졌다는 거다. 이번 기회를 바탕으로, 1년에 한번은 가족과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보고자 한다. 이 목표를 통해 내가 좀 더 집중할 수 있는 동기를 만들어보려고도 한다.

개발자로서의 가치관

개발자 (있어보이는 말로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가 있다.) 로 일하다 보면 목표를 위해 trade off를 해야할 때가 있다. 가장 보편적으로 분산 시스템 설계시 자주 등장하는 이론 중 CAP Theorem 이 있다.

CAP_theorem_Wikipedia

Consistency, Availability, Partition Tolerance 세 가지를 모두 만족할 수 없고, 최대 두 가지를 만족시킬 수 있다는 이론이다. 다른 개발자들과 시스템 디자인과 같이 복잡한 해결방안을 구성해야할때는 우리가 지켜야할 가치를 가지고 이야기한다. 이는 제품(기획자) 단에서 결정되어 내려질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개발자 개개인의 가치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개개인이 가진 가치관이 늘 같을 수는 없다. 갈등을 줄일 수 있는 많은 방법론이 나오지만, 은탄환은 없다. 팀을 빌딩하면서, 각 개발자가 단순 어떤 기술적 역량 (언어가 어떻고, 데이터베이스가 저렇고, 등등) 을 가졌는지 아는 것 뿐만 아니라 어떤 가치를 가지고 있는지 또는 기대하는지를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때로는 상황이 우리의 가치관을 재단할 수도 있다. (영속적인 건 물론 아니다. 제품과 상황에 맞추어 내가 동의하지 않더라도 팀을 위해 나아가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개개인이 가진 가치관에 따라 우리는 갈등을 마주해야할 수도 있고, 갈등을 좁힐 자신이 없다면 갈등을 최대한 줄일 수 있는 높은 확률을 선택하는 것도 방법이다. 2025년 회고에는 갈등을 좁히는 방법에 대해 좀 더 사고해보려고 한다.

 

Silver bullet - Wikipedia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Folkloric weapon A prop silver bullet, as used by the Lone Ranger; the effectiveness of real silver bullets compared to lead ones is not entirely known. In folklore, a silver bullet is often one of the few weapons that

en.wikipedia.org

기억하지 못하는 일상

작년도 그렇고 올해도 그렇고 캘린더를 보면서 이렇게나 많은 일이 있었는지 놀란다. 그만큼 스쳐지나가는 날들이 많았다는 증거다.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기억하지만, 캘린더에 저장된 문구를 보지 않는 이상 내가 먼저 그 기억을 가져오는 일은 없었다. 작년에 이를 느낀 이후로 일기를 쓰기로 했었는데, 일기에 쓴 문장들이 퍽 내 것이 아닌 것 같이 느껴진다. 더군나 언어적으로 많은 혼동이 있었던 탓에, 영어와 한국어가 섞여 이상한 낙서처럼 보이는 일기도 있다. 

모든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게 나에게 있어 큰 불안과 강박을 주진 않는다. 그저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면 내가 이걸 기억할 수 있을까 하는 찰나의 염려가 지나갈 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없다. 내가 이렇게 느끼는 것은, 아마도 나에게 맞는 것이었다면 다시 경험을 찾게(시도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다시 겪지 않아 도태되는 경험(혹은 지식)이라면 나에게 있어 무용한 무언가라는 생각이 기저에 깔려있는 듯 하다. 그래서 기억하지 못한다고 해서 크게 불안해 하지 않는다. 사실 조금 더 부풀려 말하자면,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탓에 매 연말 내 캘린더를 쭉 보면서 그 때 느꼈던 새로움을 되새김질 할 수 있어 좋은 것도 있다. 

심리 상담

일주일에 한번, 상담을 받고 있다. 주로 내가 느끼는 심리적 불편감에 대해 토로한다. 상담자 선생님은 내가 이야기한 내용의 순서, 어휘, 표현을 면밀히 붙잡아 내 심리를 사고해서 내 상황을 진찰한다. 꽤나 불편감이 드는 것은 사실이나, 내가 나를 이리도 생각하지 못했다는 부끄러움이 계속 다닐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한다. 주제는 매주 달라진다. 다른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맞는 방식이다. 어떤 주에는 내 압박감에 대해, 어떤 주에는 내 과잉에 대해, 결핍에 대해, 등등을 가지고 이야기하다보면 시간이 부족하게 느껴질 때도 태반이다. 지금은 내가 느끼는 감정에 대해 진단하는 연습을 하고 있다. 내가 느끼는 것이 추상적인 이미지가 아니라, 명징한 어휘로 짚어낼 수 있도록 하는데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사용하고 있다. 많이 힘든 것이 사실이다. 내가 가진 단어들이 어떤 개념인지를 이해하고, 내 감정이 어떤 단어들의 집합으로 표현될 수 있는지 그 형태를 그리는 것.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내가 어떻게 행동해야하는지 사고하는 것은 쉬이 적응되질 않는다. 아마도 2025년도 회고에도 같은 내용을 적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지난 주 나보다는 아주 조금이나마 나아지리라 하는 다짐을 가지고 새로운 해를 맞이한다면 기대를 하지 않을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나에게 있어 2024년도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와 무엇을 배웠는지 관철한 연도라고 정리한다.

'생각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3 회고  (0) 2024.01.01
인스타그램을 삭제합니다.  (0) 2023.07.08
2020년 회고  (0) 2020.12.31
블랙머니부터, 개발자의 순리까지  (0) 2020.12.06
2018 회고  (0) 2018.12.31